최근 가상자산 시장이 겹악재를 맞으며 크게 출렁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란 타격 유예 기한과 맞물린 대규모 비트코인 옵션 만기, 그리고 차기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지명자의 매파적 성향에 대한 우려가 동시에 시장을 덮쳤다. 이로 인해 비트코인을 대거 보유한 이른바 ‘트레저리(Treasury)’ 기업들의 주가마저 동반 폭락하는 등 거시적 불확실성이 짙어지는 모습이다.
150억 달러 옵션 만기와 중동의 긴장감
가장 먼저 시장의 이목을 끄는 것은 파생상품 거래소 데리비트(Deribit)에서 금요일 만기를 맞는 150억 달러 규모의 비트코인 옵션이다. 이는 현재 거래소 비트코인 미결제약정 365억 달러의 40%에 육박하는 엄청난 물량이다. 2025년 코인베이스에 29억 달러에 인수된 이후에도 독자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데리비트 측은, 이더리움을 포함해 총 170억 달러의 옵션이 내일 만기를 맞이한다고 밝혔다. 전체 시장의 비트코인 미결제약정 규모는 전날 대비 8% 증가한 1,120억 달러에 달한다.
문제는 이 시점이 지정학적 리스크와 절묘하게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발전소 타격을 5일간 유예하기로 한 외교적 시한이 금요일 옵션 정산 시점과 거의 일치한다. 장-다비드 페키뇨 데리비트 최고상업책임자(CCO)는 “비트코인이 최근 7만 1000달러 선까지 반등했던 것은 타격 유예 결정 덕분이었다”며 “외교적 윈도우의 종료가 옵션 만기와 겹치면서 단기적인 변동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파생상품 데이터상으로는 트레이더들이 꾸준히 위험을 축소하며 통제된 정산을 대비하는 듯 보이지만, 주말 사이의 후폭풍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높다. 넥소(Nexo)의 애널리스트 일리야 칼체프는 “진짜 중요한 것은 정산 이후의 흐름”이라며, 2025년 9월 만기 직후 변동성이 급등하며 190억 달러 규모의 연쇄 청산과 폭락이 일어났던 사례를 언급했다. 현재 비트코인의 30일 변동성 지표는 2.23%로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매파적 연준 우려에 직격탄 맞은 트레저리 기업들
거시 경제 측면에서는 차기 연준 의장으로 유력한 케빈 워시의 매파적 성향이 시장을 짓누르고 있다. 그의 취임 이후 금리 인상 가능성이 제기되자 위험자산 기피 심리가 빠르게 확산됐다. 연초 이후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은 각각 약 12.8%, 24.8% 하락하는 등 전반적인 부진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다. 거시적 악재가 겹치며 7만 6000달러 선에 머물던 비트코인 가격은 최근 7만 912달러 선까지 밀려났다.
이는 가상자산을 재무 기반으로 삼는 기업들에게 뼈아픈 타격이 됐다. 세계 최대 비트코인 보유 기업인 스트래티지의 주가는 지난달 29일 단 하루 만에 9.6% 곤두박질쳤다. 작년 4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발언 직후 기록했던 최저치 수준이다. 비트코인 가격이 9개월 만에 처음으로 8만 달러 아래로 떨어지면서, 71만 2647개(평균 매입가 7만 6037달러)의 비트코인을 들고 있는 스트래티지는 가격이 7만 5678달러까지 하락했던 지난 1일 한때 장부상 손실 구간에 진입하기도 했다. 세계 최대 이더리움 보유사로 알려진 비트마인 역시 이틀에 걸쳐 약 16% 폭락하며 깊은 수렁에 빠졌다.
위기를 기회로? 엇갈리는 전망 속 반등 기대감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마이클 세일러 스트래티지 회장은 소셜 미디어 X에 비트코인의 상징색을 뜻하는 ‘더 많은 오렌지(More Orange)’라는 글을 남기며 추가 매수 의지를 강력히 피력했다. 물론 현실적인 장벽은 존재한다. 회사 주가가 주당 150달러 밑으로 떨어지고 영구 우선주마저 액면가 아래에서 거래되면서, 시장가매출(ATM) 방식 등을 통한 단기적인 자금 조달은 꽤 까다로워진 상태다. 이에 회사는 배당률 인상을 통해 주가 부양과 자금 조달 여건 개선이라는 돌파구를 찾고 있다.
비관론을 경계하는 긍정적인 신호들도 포착된다. 매파로 분류되는 케빈 워시가 사실은 ‘친(親) 가상자산’ 성향을 띠고 있다는 분석이다. 세일러 회장은 그가 “첫 친 비트코인 연준 의장이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실제로 워시는 과거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인터뷰에서 “비트코인은 정책 입안자들에게 올바른 정책을 펴고 있는지 판단하는 데 도움을 주는 중요한 자산”이라고 평가했으며, 암호화폐 스타트업 베이시스(Basis)에 초기 투자자로 참여한 이력도 갖고 있다.
시장 전반에 깔린 매크로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비트코인이 7만 달러 선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는 점 역시 고무적이다. 칼체프 애널리스트는 “지정학적 긴장과 주식 및 에너지 시장의 약세 속에서도 현물 수요가 탄탄하게 받쳐주고 있다”며 장기 보유자들의 변함없는 지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향후 시장의 향방을 가늠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자금 회전을 넘어선 새로운 자본 유입의 신호, 즉 ETF 자금 흐름과 온체인 축적 지표를 예의주시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