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역대급 돈잔치다. SK하이닉스가 구성원들에게 기본급(연봉의 1/20)의 2964%라는 전례 없는 수준의 초과이익분배금(PS)을 돌리기로 했다. 작년 하반기에 지급된 생산성 격려금(PI) 최대치 150%와 상반기분까지 모두 합치면, 작년 한 해 성과로만 무려 3264%의 인센티브를 챙겨가는 셈이다. 종전 최고치였던 최대 1000% 한도의 PS에 특별성과급 500%를 더해 총 1500%를 지급했던 지난해(2024년 지급분)와 비교해도 그 규모가 두 배 가까이 훌쩍 뛰었다.
이런 파격적인 보상은 단순히 선심성 이벤트가 아니다. AI 반도체 전쟁이 ‘인재 전쟁’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노사가 아예 성과급 산정의 판을 새로 짰다. 핵심은 기존 1000%라는 천장을 과감히 박살 내고, 전년도 영업이익의 10%를 고스란히 재원으로 붓겠다는 것이다. 회사는 이 파격적인 기준을 앞으로 10년간 밀고 나가기로 합의했다. 개인별로 산정된 금액의 80%는 당장 통장에 꽂히고, 나머지 20%는 2년에 걸쳐 10%씩 이연 지급된다. 파운드리 절대강자인 대만 TSMC가 영업이익의 10% 안팎을 성과급으로 푸는 것과 딱 맞아떨어지는 글로벌 스탠더드급 보상 체계다. 업계 일각에선 이 정도 보상이면 고질적인 ‘의대 쏠림 현상’마저 늦추고 국내외 이공계 우수 인재들을 쓸어 담을 수 있는 묵직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숫자를 뜯어보면 이 돈잔치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SK하이닉스의 작년 한 해 매출은 97조 1467억 원, 영업이익은 47조 2063억 원을 찍었다. 이 압도적인 실적을 바탕으로 계산된 PS 재원만 약 4조 7천억 원에 달한다. 올해 산정에서 낸드 자회사인 솔리다임의 영업이익이 빠져 실제 재원이 4조 5천억 원 수준으로 살짝 줄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천문학적인 액수다. 회사는 직원들이 PS의 최대 50%를 자사주로 받겠다고 선택해 1년을 쥐고 있으면 매입가의 15%를 현금으로 얹어주는 주주참여 프로그램도 굴리고 있고, 퇴직연금(DC형)으로 적립할 수 있는 길도 열어뒀다.
게다가 올해 전망은 더 무섭다. 엔비디아 등 주요 고객사에 HBM3E(5세대)를 넘어 HBM4(6세대)까지 물량을 쏟아내면서, 증권가에서는 연간 영업이익이 100조에서 130조 원에 달할 거란 장밋빛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안방에서 거둔 승리에 취해있을 틈이 없다. 막대한 현금 창출력을 입증한 SK하이닉스의 시선은 이미 바다 건너 미국 나스닥을 향해 있다. 이르면 오는 7월, 미국 주식예탁증권(ADR) 상장이 마무리될 수 있다는 소식이다. 당초 시장에서는 8월쯤을 예상했는데 스케줄이 생각보다 꽤 빠르다. 이미 이달 초 해외 기관투자자들을 상대로 논딜 로드쇼(NDR)까지 마쳤고, 현재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의 최종 승인만 남겨두고 있다.
타이밍도 절묘하다. 7월 하순으로 예정된 2분기 실적 발표를 기점으로 ADR이 데뷔전을 치를 가능성이 농후하다. 1분기 영업이익이 37조 6103억 원이었는데, 2분기엔 60조~65조 원을 훌쩍 넘길 거란 예측이 지배적이다. 이 괴물 같은 실적 성적표를 들고 미 증시 문을 두드리면 현지 투자자들의 지갑이 열리는 건 시간문제다. 이미 곽노정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SEC에 상장 서류를 은밀히 제출(3월 24일)했다고 털어놓으며 글로벌 빅테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기업가치를 재평가받겠다는 야심을 숨기지 않았다.
이를 위해 씨티그룹, JP모건, 골드만삭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IB들을 주관사로 꽉 잡았다. 이번 미국행을 위해 신주를 발행할 것으로 보이는데, 예상되는 ADR 발행 물량은 전체 발행 주식의 약 2.5%, 금액으로 따지면 최대 40조 6700억 원에 달하는 매머드급이다. 이 막대한 달러가 성공적으로 수혈되면 회사가 내건 ‘순현금 100조 원’ 달성 목표에도 엄청난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물론 회사는 100조 원 규모의 주주환원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라는 일각의 뜬소문에는 선을 그으며 ADR 상장 일정 역시 아직 100% 픽스된 건 아니라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했다.)
결국 지금 SK하이닉스의 행보는 명확하다. 안으로는 대체 불가능한 핵심 인력들의 지갑을 든든하게 채워 경쟁사로의 이탈을 원천 봉쇄하고, 밖으로는 글로벌 자본 시장의 심장부로 돌진해 AI 패권 경쟁에 쓸 막대한 실탄을 장전하는 것이다. 무섭게 질주하는 이들의 ‘빅 픽처’가 향후 반도체 지형도를 어떻게 흔들어 놓을지 글로벌 시장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